역설과 반전: 즐거운 경계 넘나들기

 

우현수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한국미술 큐레이터

조각가 신미경은 지난 20 여 년간 비누라는 친숙한 재료로 서양의 고대 조각이나 동양의 불상과 도자기들을 재현해 왔다. 마치 유물들의 마담 투소 Madame Tussauds 밀랍박물관을 방불케하는 전시실은 시간과 품이 드는 수공의 작업을 통해 완벽에 가깝도록 모조되어진 작품들로 가득하다. 관람객들은 원작과의 주도면밀한 유사성에 감탄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러한 표면적인 흥미 유발과는 거리가 있다. 그가 재현하는 작품들은 주로 오랜 시간을 통해 문화적 가치가 부여된 유물들로서 돌이나 도자기와 같이 견고하고 불변하는 재료로 만들어진 오브제들이다. 이들이 가지는 영속적인 가치를 비누라는 가변적 소모품으로 바꾸어 보여줌으로써 원작과 재현품 사이의 좁혀질 수 없는 틈을 보이고, 진품과 가품의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마치 원 제작지에서 이탈한 그리스의 조각기 영국의 박물관에서 새로운 맥락에 부여받았듯이, 그것이 다시 비누로 재현된 후에는 또 다른 문화적 문맥이 더해지게 된다. 이는 단순히 재료의 치환이나 원본과 모각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매우 복잡다단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신미경은 하나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대비되는 이중성을 적절히 배합하여 동양과 서양, 공예와 순수미술, 일상과 예술, 과거와 현재, 유물과 창작품, 원본과 재현품 등 역설과 반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또한 그를 통하여 오브제가 가지는 숨겨진 맥락을 드러낼 뿐 아니라 자신만의 해석과 번역을 통해 다시금 새로운 맥락을 창조해 낸다.

작가가 한국에서 접했던 서양 미술은 대학입시를 위한 석고 데생용으로 제작된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상들처럼 이미 한국화가 되어버린 것으로, 그 본질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후 영국의 박물관에서 처음 접하게 된 고대 조각상들은 소위 ‘오리지널’이기는 했지만 발생지와는 동떨어진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는 작품들로 역시 태생의 의미를 상실한 상태였다. 이들은 다시 비누로 재현하는 작업 과정에는 작가의 다양한 이력과 경험 등이 함께 녹아들어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원작기 단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서양의 것을 기본으로 하였지만 작가의 동양적 시각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완전히 서양의 것도, 그렇다고 동양의 것도 아닌 고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그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중국 도자기들도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매우 중국적이라고 인식되어진 이 도자기들이 중국에서는 전혀 중국적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소비지인 서양의 기호에 맞추어 주문 제작된 수출용 도자기들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중국적이지만, 토착적인 중국의 것이 아닌, 한가지의 시점이나 시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성을 21 세기 아시아 작가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신미경을 때로는 계획된 행동을 개입시켜 새로 만들어진 작품의 초고속 유물화를 진행시키기도 한다. 진짜처럼 만들어진 고대 서양 조각상이나 동양의 불상들을 화장실에 두어 사람들이 손을 씻는데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평소에 만질 수 없는 예술품이 세정제라는 실용품으로 변하여 소비되는 동안 이들은 인위적인 풍화작용을 거쳐 긴 세월을 마모된 유물의 모습으로 변형되고, 결국에는 다시 전시장으로 들어오게 된다. 하나의 오브제가 가지는 예술품, 실용품, 유물로서의 다양한 정체성을 자유자재로 전환시키며 관람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주로 유물의 재현을 통해 그들의 다중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데에 집중했던 작가는 가장 최근작 <폐허 풍경> (2018)을 통해 본인이 탄생시킨 작품의 근원지를 제시하는 매우 흥미로운 맥락화를 시도하였다. 대리석처럼 다듬은 비누로 허물어진 건물 벽을 축조하고, 부분만 남은 아치는 위태한 구조물 위에 올려두었다. 마치 지금 막 발굴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연상시키는 모습니다. 작가가 비누로 재현한 서양의 조각상들은 복제의 대상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코 같은 발생지를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그들만의 독자적인 컨텍스트를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

여기서 관람객들은 원본과 모방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신미경은 왜 그토록 공을 들여 원본과 똑같은 모조품을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신미경의 ‘모조품’은 어떤 가치를 가지는 것인가? 법고창신, 온고지신과 같은 동양적 사고방식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대미술에서 과거 작품의 차용, 재해석, 원본과 모방에 대한 문제가 다루어진 것은 제법 오래 되었다. 신미경은 자신의 모조품을 의도적으로 다른 맥락을 보여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원본과 모방의 차이를 발견하게 한다. 이것은 원본에 대한 작가의 번역일 뿐만 아니라, 보는 이가 스스로 번역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오브제가 가지는 대립되는 특성과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신미경의 작업 철학은 현대미술의 당면 과제에 대한 매우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아직까지 세계의 현대미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서유럽의 남성 작가들이 주류로 인식되고 있으며 전시실에서 그 이외 작가군의 작품들은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치우침 현상을 개선하려는 미술관들의 현대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현대 미술의 개념 확장이다. 우선 이제까지 서양 현대 미술의 논의의 중심이었던 서유럽과 미국 이외의 지역, 즉, 아시아, 중근동, 아프리카, 동유럽 등의 미술을 논의에 포함시킨다는 지역적 확장이 그 논의의 가장 중심에 있다.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회화나 조각, 설치 등 소위 순수미술 영역을 넘어서는 공예나 디자인 등 다양한 매체와 형식의 작품을 현대미술의 범주에 두고 함께 탐구하고자 한다. 더 이상 한 매체만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찾아보기 어렵고, 단순히 재료만으로 순수 미술과 공예의 경계를 확정하기에는 현대미술의 양상이 그리 단순하지 만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시대와 문화권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종합미술관의 경우, 소장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역사적 유물에 현대미술적 경험을 접목하는 것 역시 중요 과제의 하나다. 사람들은 점점 동시대 작가의 예술에 더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추세이고, 이러한 현상을 이용하여 자칫 고루하다 느낄 수 있는 고대 및 근대 예술품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신미경에세 있어서 서양미술은 외부에서 발생한 객관화된 타자이자, 동시에 한국 정착한 주관화된 자아이기도 하였고, 이에 대한 독특한 번역과 해석은 작가가 성장한 한국, 아시아라는 지역에 기반하고 있다. 한국에서 바라보는 서양미술의 의미를 제시하고 이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발생하는 다중적인 맥락들은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소위 ‘전통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한국 태생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포지션을 보여주는 매우 영리한 접근법이 아닐수없다.

또한 대상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비누의 속성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다양한 안료의 발색을 탐구하며, 뛰어난 그림 솜씨로 도자기에 모의를 얹는 일련의 과정들은 시간과 품을 들여 재료의 물성에 통달하고, 작품 완성에 필요한 기술을 끊임없이 연마하는 도공의 태도와 다름이 없다. 이는 작가를 도공과 순수미술 창작가 사이에 위치시킨다. 그러나 공예품은 실생황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신미경의 작품은 공예의 기본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순수 미술’의 의미를 무용하지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도공과 같은 태도로 도자기 모양 그대로, 또 도자기 제작 과정과 거의 유사하게 만들어낸 신미경의 작품은 순수한 미술작품이지만, 공예적 태도로 제작된 애매한 어느 지점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가는 현대미술이 대중문화, 일상용품, 매스미디어 등과 같이 소위 순수 미술로 여겨지지 않았던 영역을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고 있다는 점을 비누 조각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오랜 시간에 걸친 치열한 노동의 산물인 신미경의 작업 태도는 지극히 공예적이지만, 그것이 그녀의 작업을 공예로 분류하지 않는 것처럼, 현대미술에서 재료나 기법으로 공예와 순수미술의 경계를 가르는 것이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으며, 순수 미술의 영역이 보다 유연하고 포괄적으로 변하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유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맥락화하는 과정은 관람자들의 시선을 현대와 과거, 원 제작지와 재 생산지의 시공을 자유롭게 넘나들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하여 대상에 대한 보다 풍부하고 입제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신미경은 자신이 경계를 허무는 의도는 기존의 공고하다고 믿었던 가치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자, 이를 통하여 그 이면에 깊숙이 내재하고 또다른 의미들을 드러내는 것이 그 목적이라 말한다. 비누로 도자기처럼 보이는 작품을 빚으며 마치 도공처럼 작업을 했던 작가가 최근 다시 학교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도예를 공부하고 있다. 도자기에서 비누 조각으로, 비누 조각에서 다시 도자기의 본질을 매우 역설적인 회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혼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싶다는 신미경의 이러한 시도가 앞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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