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안휘경

 

     1871년 독일의 사업가이자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은 잃어버린 전설의 도시 트로이를 찾아 나섰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선물한 책 속의 그림을 본 이후 호메로스가 지은 고대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신화 도시, 트로이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슐리만은 고대 트로아스 지역(현 터키 북서부 지방)에 위치한 히살리크 언덕 밑을 발굴하기 시작했고 어느 고대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요새의 잔해를 발견한다.[1] 이 잔해가 트로이 요새의 일부라 믿은 그는 얼마 후 트로이의 전설적인 왕 프리암의 황금 보물까지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 했다. 이후 조사 결과 이 보물은 프리암 왕의 시대보다 천 년 정도 앞선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당시에는 히살리크 언덕이 트로이 유적지라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현대 많은 전문가들은 슐리만이 발굴 과정에서 트로이 유적이 위치하는 주요 지층을 파괴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확실치 않은 유적을 방문하기 위해 관광객과 고고학 마니아들을 이스탄불에서 히살리크 언덕까지 여행을 하고 있다.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슐리만의 트로이는 슐리만에 의한 슐리만의 트로이에 불과하다. 히살리크가 잃어버린 도시의 유적지라는 그의 믿음은 트로이가 신화와 실제 역사 사이 어딘가에 자리잡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역사적/고고학적 '사실'과 신화는 경계가 매우 모호하고 기본적으로 시대적 쟁점과의 관계와 시대적 맥락으로 구별 지어진다. 따라서 과거는 끊임없이 재창조된다...."[2]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누구의 손에서 누구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일단 발견된 "유적"은 기존 가치 체제 및 역사적 서술에 흡수되거나 또는 그 예외가 되기 위해 "발견자"에 의해 새로운 문화, 경제 및 사회정치적 의미를 부여 받는다.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과 같은 대형 박물관 복도에는 "과거가 남긴 물질적 흔적들이 이름표를 붙인 채 순서대로 분류되고 정렬되어 갇혀 있다. 과거는 하나씩 채워 넣는 거대한 미로와 같은 건물이 되었다. 그리고 고고학자들은 열쇠를 가지고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이들을 감시하고 관리하고 지배한다."[3]  설화가 역사가 되고 과거가 현재로 들어온다.

     신미경 작가의 대규모 설치물 <폐허 풍경>(2018)은 이 같은 역사의 저작성(authorship)에 도전한다. 그녀가 거의 20년간 사용해온 비누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발굴 중인 고고학 유적지를 닮아 있다. 그녀는 비누라는 일상 소재를 사용해 반투명한 벽돌을 만들고 벽돌을 층층이 쌓아 올려 한 때 위용을 자랑했을지도 모르는 건축물의 청사진을 추적한다. 안에는 다양한 색상과 높이의 기둥이 서 있다. 일부는 고대 그리스 사원과 기념물에 사용된 석회석을 닮았고, 일부는 로마 건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판테온과 같은 건축물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던 노란 대리석을 닮았다. 이 상상 속 폐허에는 주춧돌과 벽에 놓인 고대 조각상과 조형물이 흩어져 있다. <폐허 풍경> 앞으로 다가 가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어긋나 있다; 로마 군인의 머리, 아기를 돌보고 있는 머리 없는 18세기 프랑스 성자, 파괴된 기둥의 기둥 머리, 중국 반신 불상. 수백 년 동안 수천 마일에 걸친 세계 여러 곳에서 번성했던 종교와 전통 유물이 같이 나란히 놓여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건물의 페디먼트, 뾰족한 3점 고딕 아치, 중세 성의 화살 구멍 등 시간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건축 요소가 하나의 물리적 공간에 공존한다. 이들 유물은 서구의 역사로 보아 한 장소에서 동시에 발굴될 수 없기 때문에 역사의 정확성을 기대했던 사람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현대 여성 작가 손에서 시대는 무너지고 지리적 공간은 하나가 되었다. 여기서 시간과 공간의 압축은 메타포가 아닌 실제이다. 비누 작품은 야외에 내놓아 비, 태양, 눈을 맞게 하거나 전시장의 화장실에 놓아두어 손님들이 사용하도록 해 낡고 오래된 느낌을 살렸다. 작가는 이를 "풍화" 과정이라 부른다. 신미경 작가는 문명과 시대별로 구별하는 기존 박물관의 분류 체계가 아닌 의도적으로 정통에서 벗어난 방법을 통해 스스로 역사를 저술할 권리를 주장한다:

과거와 현재를 사회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은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어 상이한 해석과 관심사를 수용할 수 있다. 인류학자(고고학자 포함)와 역사가는 마스터 건축가이므로 따라서 복잡한 지배와 복종 분야에서의 이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4]

    ‘폐허 풍경’은 역사란 다만 조작에 도전하는 태피스트리일 뿐이라는 사실과 누구라도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신미경 작가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1995년 저명한 런던 슬레이드 스쿨(Slade School of Art)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유학 시절 찾았던 대영 박물관에서 그녀는 한국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여러 유물 중 특히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조각띠)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회상한다. 1753년 설립된 대영 박물관은 계몽주의적 사고와 식민지 야욕에 힘입은 제국주의를 상징한다. 식민지의 팽창으로 가능해진 고고학적 발굴 기회의 확대는 다른 유럽 박물관과 더불어 대영박물관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해 현대에 끝이 나는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역사의 타임라인을 세우는데 일조했고 대부분 대규모 서양 박물관은 지금도 이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마스터 건축가"의 서양 중심적인 위치는 나머지 세계를 "원시적"이라고 이름 붙여 역사의 기술에서 격리하고 과거에 영원히 묶어 두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신미경 작가는 이러한 저작성에 대한 주장에 도전하고 의문을 제기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이는 2009년 시작한 쿠로스 조각 시리즈에서 가장 잘 드러나있다. 쿠로스란 고대 그리스의 젊은 남성 누드 조각상을 가리킨다. 성소에 바치는 봉헌물 또는 묘지 기념비로 제작되는 쿠로스는 일반적으로 왼발은 앞으로 내딛고 양팔을 몸통 옆에 붙이고 똑바로 앞을 보고 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 서양 미술사에서 쿠로스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비엔나 출신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는 유명한 1950년 저서 ‘서양미술사(The History of Art, 1950)’에서 쿠로스의 해부학적 리얼리즘의 발전은 자연주의를 향한 서양 예술의 역사적 전통과 발전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기술했다.[5] 따라서 쿠로스는 고전주의 시대의 발판을 마련한 "그리스 혁명"의 탄생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문화 및 예술적 진보에 대한 현대 서구세계의 이상을 뒷받침한다.

    다양한 높이의 <풍화 프로젝트: 쿠로스>(2009-)와 <화석화된 시간 시리즈>(2018)에서는 다양한 시대의 쿠로스를 볼 수 있다. 초기 쿠로스(약 기원전 615-590년)는 양팔을 몸통 옆에 붙인 채 반듯이 서서 주먹을 쥐고 아래를 응시하는 모습이다. 걸을 때처럼 다리 하나를 앞으로 내딛고 있지만 평발로 움직임이 없고 근육, 머리카락과 같은 세부는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되어있다. 하지만 후기의 쿠로스는 ―유명한 아리스토디코스 쿠로스(기원전500년)의 복제품처럼―머리가 작고 해부학적으로 더 정확히 근육과 골격이 표현되어 고대 이상적인 남성 육체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져 있다. 또한 팔이 몸통에서 떨어져 신체 각 부분의 상호 연관성이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풍화 프로젝트: 쿠로스>는 하얀 대리석과 비슷한 느낌의 비누로 만들어졌다. 새롭게 선보인 <화석화된 시간 시리즈>의 작품들은 산화동으로 마감되고 금박을 입혀 제목이 의미하는 물질의 자연적 골화 과정을 표현했다. 이 같은 시도는 쿠로스의 원형이 기원전 672년 그리스와 이집트 사이 무역이 재개된 후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6] 그리스의 전통을 단일하게 규정하는 우리의 성향으로 인해 ―실제 쿠로스는 석회석, 나무, 브론즈, 상아 와 테라코타 같은 재료로도 만들어졌는데도―당연히 쿠로스와 대리석을 연관시키는 전통에 대한 도전이다. 기존 박물관처럼 조명과 주추를 사용하지만 작품을 비연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전통적 박물관 전시 방식에도 도전한다.

     그럼에도 실제 비누 조각상은 놀랄 만큼 사실적이고 기술적으로 정교하다. 패러디도 아니고 모방도 아닌 이 작업을 신미경 작가는 "번역(트랜스레이션)"이라고 부른다.[7] 비누 소재는 이에 대한 완벽한 메타포이다. 비누는 미끄럽고 녹는다. 주물, 주형제작, 수공 조각 과정으로 이뤄진 쿠로스 복제 작업은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결과는 원본과 절대 똑같지 않다. 신미경 작가의 작품에서 과거 예술은 현재를 위해 번역된다.

     현재 우양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에서 신미경 작가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트랜스레이션 시리즈 – 꽃병>(DATE)에 도전하여 조선 왕조(1392-1910) 백자에 경의를 표하는 새로운 작품인 <트랜스레이션 시리즈 – 백자>(2018)를 선보인다. <트랜스레이션 시리즈 – 꽃병>은 16-20세기 유럽 시장 수출용으로 제작된 중국 도자기를 모티브로 만든 화려한 꽃병을 목재 상자 위에 전시해 놓아 마치 꽃병 포장을 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백자는 15세기 왕실에서 사용하면서 급속히 인기를 얻어 전국적으로 제작되었다. 가장 유명한 백자로는 달항아리가 있다. 달항아리는 둥근 모양과 유백색 빛깔이 달을 연상시킨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며 이후 조선 사회를 지배하던 성리학의 덕목, 즉 금욕주의, 겸손, 순수성을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신미경 작가의 눈부신 백자는 한국뿐 아니라 뜻밖에도 다양한 시대에 걸친 중국과 일본 도자기의 모습도 하고 있다. 신미경 작가의 <트랜스레이션 시리즈 – 꽃병>에 익숙한 이들에게 백자 시리즈에서 보여준 지움의 방법이 정교한 장식뿐 아니라 동양을 상징하는 장식이 서양 수사학과 시장에서 가정용품인 도자기에 부여한 문화적 지위와 경제적 가치와 관련해 주는 효과는 즉각적이다. 신미경 작가는 전세계로 수출되던 이들 도자기의 여정이 적힌 라벨을 목재 상자에 똑같이 부착해 데자뷰 효과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을 문화 생산의 대리인으로 매김하고 역사 기술의 재구성 메커니즘에 있어 예술가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한다.

     전시회 제목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2009)’에서 차용했다.[8] ‘오래된 미래’는 헬레나 호지가 기업 세계화와 서구의 발전 개념의 적용으로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 라다크가 겪은 영향을 저술한 책이다. 신미경 작가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진보와 동일시하고 경험적 지식을 진리로 믿는 기술 중심의 세계에서 아나크로니즘, 재생산 및 재현을 통해 계승되어 온 진실, 지식 및 역사를 와해시킨다. 마스터 건축가처럼 신미경 작가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어디로 왔는지 알기 위해 뒤를 돌아본다. "분명히, 과거는 현재가 될 수 없지만 우리는 과거가 남긴 흔적 속에 살고 있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아직 살아 있다."[9]

 

[1] Michael Wood, In Search of the Trojan War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참조.

[2]  Nandini Rao, “Interpreting silences: symbol and history in the case of Ram Janmabhoomi/Babri Masjid,” in George C. Bond and Angela Gilliam (eds.), Social Construction of the Past: Representation as Power (London: Routledge, 1995), pp. 154, 161.

[3] Michael Shanks and Christopher Tilley, Re-constructing Archaeology: Theory and Practice (London: Routledge, 1992), p. 10.

[4] Bond and Gilliam (eds.), Social Construction of the Past, p. 5.

[5] Ernst Gombrich, The History of Art (London: Phaidon, 1950).

[6] S. Rebecca Martin, The Art of Contact: Comparative Approaches to Greek and Phoenician Art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17), p. 42.

[7] Meekyoung Shin. Translation (Seoul: Kukje Gallery, 2009).

[8] Helena Norberg-Hodge, Ancient Futures: Lessons from Ladakh for a Globalizing World (San Francisco: Sierra Club Books, 2009).

[9] Shanks and Tilley, Re-constructing Archaeology, p.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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