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경: 지나간 미래에 대한 추억 

 

우정아

 

 

1. 복제품의 아우라  

 

    대규모의 개인전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공간을 가득 채운 청량한 비누향이 온 몸으로 파고들었다. 눈으로 보는 이미지는 사물의 잔상일 뿐이나, 코로 맡는 냄새는 실존하는 분자가 일으키는 화학 감각이다. 신미경의 비누 조각은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물질로 끊임없이 분해되어 우리의 몸속으로 글자 그대로 파고든다. 작품은 그렇게 물리적인 현상으로서의 감상과 동시에 눈에 띄는 휘발과 풍화의 과정을 거쳐 늘 ‘사라지는 중’이다. 태생이 불안정한 물질인 비누로 만들어진 탓에 그 소멸의 속도는 예컨대 대리석 조각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빠르다. 

    신미경의 작품을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토록 강렬하게 맡은 건 처음이었다. 비누 조각들이 이번 전시에서처럼 조밀하게 대규모로 설치된 공간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작품 사진들을 볼 때마다 커다란 결핍과 상실감이 느껴진다. 사진에서는 당연히 향기가 나지 않고, 그 날의 그 향을 아무리 떠올려 보려고 애를 써도 냄새를 기억하거나 기록하거나 보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 없이 많은 과거의 걸작들을 복제한 신미경의 비누 조각들은 그렇게 역설적으로 오직 특정 장소와 시간에 현존할 뿐, 대량의 이미지로 복제가 불가능한 ‘아우라’와 ‘진정성(authenticity)’를 가졌다. 

2. 폐허: 미래에 대한 추억

 

    <폐허풍경>은 12톤의 비누로 만들어진 건축적 설치다. 반쯤 허물어진 건물의 잔해처럼 허술하게 쌓아 올린 벽돌담 군데군데에 나무 스크린과 무너져 내린 기둥, 십자형 화살구멍이 있는 창문과 부목에 기대 선 아치형 상인방 등이 자리를 잡았다. 세계 곳곳의 유적지들을 두루 다니던 작가가 눈여겨 봐뒀던 건축의 세부 모티프들을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한 자리에 모아 비누로 재현한 것이다. 따라서 중세 유럽의 요새이거나, 인도의 사원 혹은 중국의 성채이기도 한 이 건물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인류의 보편적 과거를 증명하는 폐허다.  

    19세기 말의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은 「기념물의 근대적 숭배: 그 성격과 기원」에서 기념물의 일차적 의미는 어떤 하나의 사건이나 개인의 행적을 미래 세대에 전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이 세운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의도적’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그가 주목했던 새로운 근대적 기념물은 ‘비의도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비의도적’ 기념물은 만든 이들이 그 문화적 의미를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의도 없이 다만 당대의 실질적인 필요에 의해 조성하여 사용하던 것이나, 이후의 세대에서 그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 유적으로 보존하게 된 사례라는 것이다. 리글은 이에 대해 “어떤 인공물이라도 그 원래의 의미와 목적과 무관하게 상당한 세월의 족적을 보여준다면 기념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단언하고 그 가치는 기존 기념물이 갖고 있는 예술 및 역사적 가치와 차별화된 ‘세월의 가치(age-value)’라고 구분했다.[1]

    한편 신미경은 <폐허풍경>에 대해 “유물이라는 것이 누군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되어진다’는 측면에 주목”한 결과물이라고 했다.[2] 즉, 작가는 흐르는 세월 속에서 원래의 기능을 잃고 다만 “인간 생활의 궤적을 보여주는” 다른 기능을 갖게 된, 리글식으로 말하면 ‘비의도적’ 기념물이 보유한 ‘세월의 가치’를 재연하고자 했던 것이다. 비누는 견고한 석조 건축물, 풍화된 고대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 중국 도자기의 눈부신 색감과 매끄러운 질감에 이르기까지 ‘원본’의 표면을 완벽하게 재현하며, 동시에 그 자체가 가진 ‘세월의 가치’를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빠르게 증명해내는 유약하고 가변적인 재료이다. <폐허풍경>을 필두로 작가는 <화석화된 시간: 브론즈>, <비누에 새기다> 등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작품의 표면에 새기고자 하는 욕망을 이번 전시 전체에 걸쳐 피력했다.  

    2006년 작인 <화석화된 시간>은 그런 의미에서 특히 ‘기념비적’이고 ‘비의도적’이다. 이는 작가의 초기 도자기 작품 중 하나로, 그는 원본인 철화 백자의 문양을 재연하기 위해 철분(鐵粉)을 사용했다. 그런데 철분이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검붉게 부식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은 판매가 되었다가 작가에게로 되돌아왔고, 구매자는 작가의 다른 새 ‘도자기’로 교환을 해갔다. 사실 작가도 언제부터 철분이 변하기 시작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붉은 꽃무늬가 화려했던 큼직한 매병이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이 까맣게 변하고 일그러졌을 뿐이다.[3] 2층 통로에 홀로 전시됐던 <화석화된 시간>은 그렇게 ‘비의도적’으로 스스로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며 지금도 적극적으로 시간을 달려 사라지는 중이다.  

    리글은 ‘세월의 가치’는 단순히 감각적인 지각을 통해 상기되고, 감정적 효과로 직결되기 때문에, 그 만족을 위해 학술 지식이나 역사 교육이 필요 없고, 따라서 교양 교육과는 동떨어진 대중들에게도 감동을 준다고 했다.[4]  이처럼 무조건적이라는 점에서 종교적 감흥에 가까운 ‘세월의 가치,’ 오직 시간의 흔적만으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과거의 유물, 특히 폐허에 대한 상찬은 이미 18세기 유럽을 휩쓸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화가 위베르 로베르(Hubert Robert·1733~1808)는 1767년, 찬란했던 고대 로마 제국의 유적들을 스산한 폐허 풍경으로 재구성한 회화를 들고 파리 살롱에 혜성같이 등장하여 철학자이자 평론가, 드니 디드로로부터 ‘폐허의 로베르’라는 별명을 얻으며 각광을 받았다. 로베르는 이탈리아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고대 로마 문명의 잔재와 특히 화산재에 덮여 있던 도시 폼페이의 발굴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디드로는 그 해 살롱의 평문에서 폐허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이 폐허는 내 안에 웅장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것이 무(無)가 되고, 모든 것이 소멸하며, 모든 것이 지나간다. 단지 세계가 남고 시간이 영속될 뿐. 이 세계는 얼마나 오래되었단 말인가! 나는 두 영원 사이를 걷는다. 내가 눈길을 주는 곳마다 나를 둘러싼 사물들은 죽음을 발설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에 대해 승복하게 만든다. 풍화되고 있는 바위와 깎여나가고 있는 계곡과 죽어가는 숲과 내 머리 위에서 쇠락해가는 저 모든 것들의 존재와 비교하면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순간적인가?[5]  

 

   ‘제국의 몰락’이란 당대 유럽인들에게 특히 우수를 자아내는 주제였다. 국가의 흥망성쇠야 당연한 역사의 이치지만, 그 주인공이 마치 찬란한 태양처럼 온 세상을 호령했던 영광된 제국이라면 허무한 감정이 더욱 강렬해지기 때문이다. 한때 찬란하기 그지없던 문명의 파편을 보면서, 디드로는 인간의 유한함을 느꼈을 뿐 아니라, 그의 나라 프랑스도 머나먼 미래에 그리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의 시선은 개선문, 열주랑(列柱廊), 피라미드, 사원, 궁전의 파편들 위에서 머뭇거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로 물러난다. 우리는 시간의 유린에 대해 숙고하며, 상상 속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건물의 돌무더기들을 바닥에 흩뿌린다. 그 순간에 고독과 침묵이 우리를 둘러싸며,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유일한 생존자다.[6] 

 

   디드로는 이처럼 과거에서 온 폐허를 바라보며, 현재가 폐허가 되는 미래를 상상할 때 엄습하는 절대적 고독을 ‘달콤한 멜랑콜리’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미래는 생각보다 급히 찾아왔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은 부르봉 왕조의 궁전들을 무너뜨렸고 뒤이은 근대화의 거센 물결 속에 고풍스럽던 옛 도시 파리가 허물어졌다 다시 서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폐허란 이처럼 현존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언젠가는 소멸할 운명이라는 걸 증명하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불가피한 상실의 위협 앞에서는 그에 대한 욕망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폐허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는 과거의 희미한 흔적이다. 이들을 처음 만든 인간적인 의도는 희석되어 소멸했고, 오직 자연과 세월이 남긴 우연만이 존재한다. 폐허는 우리를 끝없이 과거로 소환하고 있지만, 우리가 폐허를 통해 그 본원적인 과거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폐허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폐허를 보존하고자 하나, 만약 보존이 완결된다면 그 순간 폐허는 없어질 것이다. 폐허는 이렇게 현존과 부재, 회상과 망각, 인간과 자연, 의지와 우연, 보존과 파괴라는 대립의 중간에서 부유하는 모호한 존재다.[7]  

   중국 도자기를 완벽하게 재현한 신미경의 <번역 시리즈>는 종종 막 운송을 마치고 꺼내둔 것처럼 목재 크레이트 위에 놓인 채 전시된다. 실제 작품의 포장과 운송에 사용되는 크레이트이다보니 표면에는 취급 주의를 요구하는 각종 스탬프가 찍혀 있고, 출발지와 도착지를 기재한 스티커 등이 덕지덕지 붙어 있기도 하다. ‘이동,’ 즉 이 도자기들이 현재 놓여 있는 이 장소에 ‘원래’ 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강변하는 이러한 설치는 단지 신미경의 작품 뿐 아니라 이들이 모사하고 있는 ‘원본’ 도자기들의 운명을 상징하고 있다. 

   서구 세계에 산재한 크고 작은 박물관들은 대체로 이와 같은 중국 도자기들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의 진열장에서 청화백자와 오채 및 분채 등을 마주하면, 그 화려한 색과 정교한 문양, 다채로운 기형(器形)에 눈을 빼앗기기 전에 우선 그 엄청난 분량에 압도되기 마련이다. ‘차이나’가 고급 도자기의 대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서구에 유입된 중국 도자기의 역사는 길다. 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양이 수출된 건 16세기말, 명나라 만력제(萬曆帝, Wanli) 시대부터다. 유럽의 상류사회에서 중국풍 취향이 유행하면서 도자기 수입이 본격화됐고, 유럽 수출용 제품은 도자기의 오랜 본고장인 경덕진(景德鎭, Jingdezhen)을 중심으로 생산됐다. 따라서 유럽의 도자기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차이나’의 한 종류로 ‘완리’와 ‘징더전’이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크락(Kraak)’과 함께 일상 용어처럼 사용됐다.[8]

   ‘크락’이란 원거리 무역에 사용되던 포르투갈의 화물선을 뜻한다. 그러나 16세기 말 이후로, 주로 만력 연간에 경덕진에서 제작한 수출용 청화 백자를 일컫는 말이 됐다. 기형은 넓은 접시와 스튜 등을 담기 위한 크고 깊은 사발이 많고, 장식은 작은 동그라미 안에 꽃이나 각종 동식물 문양을 넣고, 이 문양을 넓은 구연부에 구획을 나눠 방사형으로 배치한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크락’은 기형에서부터 문양까지 유럽의 식생활에 맞도록 개발된 특수한 그릇으로, 중국 황실용 관요에 비해 다소 품질이 떨어지기는 하나, 유럽 각지에서 비싼 값에 팔려나가며 그 소유주의 부와 취향을 드러내 줬다. 1602년, 네덜란드에서 동인도 회사를 설립한 것도 포르투갈이 장악하던 도자 무역에 뛰어들기 위해서였다. 

   결국 ‘유럽을 위한 도자기,’ 즉 ‘유러피언 차이나’란 원본이 없는 복제품이다. 그들의 원산지가 중국이라고는 하나, 중국에는 정작 그들이 없으니, 도착을 했으되 출발지가 없는 셈이다. 신미경이 본 바, 박물관의 진열장에 전시된 수많은 ‘차이나’들은 몇 개의 층위에 걸쳐 원작자들의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되어, 더 이상 원래의 목적에 종사하지 않는 이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어쩌면 과거와 현재, 탄생과 소멸, 회상과 망각의 사이를 끝없이 오고가는 폐허와 같지 않은가.  

 

3. 사라지고도 존재하는 

    안드레아스 후이센은 「진정한 폐허」에서 복제와 번역과 복사가 넘쳐나는 근대 이후에 아우라와 진정성을 욕망하는 집단적 향수병이 바로 근대 사회의 증후라고 했다. 근대인들에게 폐허가 매혹적인 이유는, 불안정한 세계에서 비록 닿을 수는 없지만, ‘더 좋고 단순했던 과거’와 ‘진정한 근원적 존재’가 틀림없이 있었다고 믿게 하는 존재론적 안식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9] 의미 없이 복제되는 이미지와 아무라가 벗겨진 예술품이 흘러넘치는 지금 신미경의 작품은 바로 그 장소와 바로 그 시간에 우리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현존을 내뿜으며 사라져가고 있다. 그 적극적이며 더할 나위 없이 ‘리얼’한 소멸의 과정을 망막이 아닌 후각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오히려 변하지 않는 절대적 존재만이 줄 수 있는 안식을 느끼게 된다. 비록 기억하지 못할 지라도, 그 작품이 내 몸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었기 때문이다.     

[1]Alois Riegl, The Modern Cult of Monuments: Its Character and Its Origin, trans. Kurt W. Foster and Diane Ghirardo, Oppositions 25 (Fall 1982), 21.독일어 원문은 1903년. 

[2] 신미경 개인전: 사라지고도  존재하는, 전시 리플렛 (아르코 미술관, 2018년), 18. 

[32018년 9월 24일, 작가와의 대화. 

[4] Riegl, 앞의 글, 24, 28. 

[5] Denis Diderot, “The Salon of 1767,” Brial Dillon ed., Ruins (Cambridge: The MIT Press, 2011), 22. 

[6] Diderot, 22. 

[7] Michael S. Roch, “Irresistible Decay: Ruins Reclaimed,” Michael S. Roth with Claire Lyons and Charles Merewether, Irresitible Decay: Ruins Reclaimed (Los Angeles: The Getty Research Institute for the History of Art and Humanities, 1997), 8-9. 

[8] 위키피디아의 ‘Kraak ware’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Kraak_ware.

[9] Andreas Huyssen, “Authentic Ruins,” Brial Dillon ed., Ruins (Cambridge: The MIT Press, 2011), 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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