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도 존재하는 것들

 

차승주

경계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시간

 

사라진 것과 존재하는 것의 경계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얼핏 화석처럼 굳어 있는 폐허의 시간도 불안정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서서히 서로의 경계를 오간다. 여기에서 경계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구분하며, 상이한 것들이 공존하는 관념적 이미지를 구축한다. 신미경 작가의 신규 프로젝트 ‹폐허풍경›은 이러한 경계성을 시각화하는 건축 구조물로, 이번 전시가 내포하는 중심 주제인 ‘시간성’에 대한 화두를 총체적으로 드러낸다. 즉 ‘액체처럼 흐르고 기체처럼 휘발되는 시간성을 고체처럼 한 덩어리로 보여주는’ 작업으로, 사라지는 것과 남은 부분의 접점에 대한 이야기이자, 비가역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일시적 포착이다. 물론 전시된 폐허풍경은 실재 참조대상이 부재한 관념적 풍경으로,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유추할 수 있는 사실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폐허의흔적으로 재현된 브릭과 기둥, 마치 발굴을 기다리 듯 무심히 놓인 유물화된 형상들은 폐허가 지시하는 이미지의 근원(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왜 ‘유물화’일까. 작가는 유물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유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유물로서 '되어진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둔다. 이를테면 어떤 특정 경험을 하는 사물은 어느 장소에 놓이느냐에 따라 작품이 되기도 하고 단순히 사물의 흔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화장실에 놓인 조각상은 비누의 도구적 기능에 충실해지고, 풍화프로젝트에 노출된 조각상은 기꺼이 사라지고 변형되는 과정 안에서 ‘유물화’의 시간을 지난다. 그리고 박물관의 어느 선반 위에 오르는 사물은 그 자체로 유물이 된다. 이렇듯 장소와 상황에 따라 유물이 되는 존재는 주어진 조건에 따른 가변성을 지닌 채, 그것의 원본성과 문화적 맥락의 견고함, 나아가 사물의 탄생과 그 조건에 대한 의구심들을 자아낸다. 그리고 시간과 장소, 문화에 따라 변화하는 유약한 존재는 그 가변성 자체를 오히려 존재의 중심축으로 설정하여 다양한 경로 안에서 축적되는 혼종의 정체성들을 부여받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신미경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다시 ‘경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선 어떤 것을 예술작품이라고 명명할 것인지의 문제, 원본과 복제, 진짜와 가짜의 경계, 건축과 조각의 경계, 작품의 창작자로서 관객 혹은 자연환경과 작가가 지니는 권위의 경계, 소멸이라는 시간성을 태생적으로 지닌 모든 존재의 삶과 죽음의 경계들이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이러한 구분에 대한 작가의 사유와 고찰을작품들로 대변한다. 여기서 태생적 소멸성을 지닌 (작품의) 재료적 속성은 견고한 대상(화)이 유예하고자 하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어느 한쪽에 힘을 실을 수 없는 판단의 유보상태를 전제한다. 나아가 문화, 역사, 지리적 맥락들에 따라 가변적 가치를 지닌 존재들의 경계성 자체를 수용한다. 이렇듯, 경계지만 명확한 구분이 불가능한 가치들의 혼재된 양상은 이번 전시에서 그 시각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비누를 경유하여 나타난다. 즉 재료로서의 비누는 시간의 흐름과 일상성을 보여주고, 닳고 마모되는 시간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작업을 대하는 태도와 작업 과정에서 이러한 비누의 속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우선 최종 ‘결과물’로서의 작품은 온전히 작가가 결정하지 않는다. 즉 화려한 문양의 중국식 도자기나 고대의 인물 조각상과 불상 등은 어느 정도 명확한 참조대상이 있고, 바람과 비와 같은 외부 환경은 작업의 결과를 결정하는 또 다른 작가로 등장한다. 이는 소위 작업의 처음과 끝의 모든 책임을 온전히 떠맡는 ‘저자’의 권위를 내려놓는 태도이다. 그리고 도자기나 인물 조각상에서 떠오르는 다른 문화적 생산물이 새로운 공간과 시간 안에서 재맥락화 되는 것도 참조대상의 오라(aura)가 영원히 동질도 아니고, 그만큼 견고하지도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권위의 유약함은 작업의 공통적 재료인 비누가 지닌 가변성으로 연결되어, 사라질 운명에 처한 모든 존재의 필연적 속성을 작업의 내용과 형식의 주요 근간으로 제시한다.

 

번역, 혼종의 존재

 

작가의 대표적 작업인 ‹번역›시리즈는 이렇게 도자기나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을 여러 장소로 이동시켜 탈맥락화한 작업으로, 문화적 맥락에 따른 인식작용이 같은 대상에 대한 다른 해석과  번역을 양산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작업이다. 작품에 덧붙여지는 해석은 그것을 둘러싼 문화, 역사,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원본이 지닌 진정성은 그것의 이동경로와 축적된 시간의 두께에 비례하여 여러 차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과 타국을 오가며 생활했던 작가의 경험이 만들어낸 스스로의 (혹은 원본의) 혼재된 문화적 정체성에서 비롯한 자연스러운 문제의식일 것이다. 또한 번역된 정보에 대한 작가의 일종의 불신은 형태적으로 원본과 동일하지만, 장소들의 맥락(들)이 부여된 혼성적 작품을 탄생시켜 관객의 혼란을 유도한다. 그리고 번역이나 이해되지 못한 틈새, 혹은 번역과 오역의 경계에 대한 관심을 작품에 반영한다. 나아가 ‹번역›시리즈 중 최근의 ‹유령›시리즈는 유리처럼 만들어졌으나 어디선가 본 듯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도자기의 지극히 최소한의 형태만 남긴 것으로 마치 사람의 형체만 지닌 유령이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오가듯, 그 근원과 맥락은 사라진 채 떠도는 형체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번역에 대한 관심은 혼성과 경계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삶과 죽음의 경계로까지 확장된다.

 

전시 ‹‹사라지고도 존재하는››

 

시간성과 경계에 대한 관심을 지속해온 신미경 작가의 이번 전시는 국내 공공미술관에서 선보인 대규모 개인전이자, 중진작가 지원 사업이는 타이틀 이외에 다음 두 가지에 특히 집중하였다. 첫째는 그 동안 개별적으로 선보인 시리즈들을 아우르는 주제와 개념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최근 구상하고 있는 신규 프로젝트 및 연구 지점을 엿볼 수 있는 신작 창작의 플랫폼으로서 아르코미술관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는 앞서 살펴본 대로 시간성에 대한 화두를 비누의 닳고 마모되는 성질과 연결하여 작업의 굵직한 틀을 형성해 온 작가의 작업이 그 동안 비누의 재료적 속성과 조각의 기술적 완성도, 장식적 요소에만 치중되면서 간과했던 작업의 본질적 요소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렇게 선정된 작업은 일곱 가지의 시리즈 안에서 그 동안 여러 이유로 선보이지 못했던 미발표작 위주의 작업과 신규 프로젝트로 소개되었다. 우선 2000년 초부터 진행한 ‹번역› 시리즈는 앞서 살펴본대로 서로 다른 문화와 장소 사이 발생하는 문화적 생산물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살핀 작업이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유령›시리즈는 깨지기 쉬운 유리도자기를 재현하여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탐구하고 있으며, 2014년 이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회화›시리즈는 명작을 화려함으로 덧입히는 프레임만 남긴 채, 내부의 본질은 소멸성을 태생적으로 내포한 비누를 사용해 미적 가치의 와해가능성을 표현했다. 한편 2004년부터 진행된 관객 참여 작업인 ‹화장실프로젝트›는 로마의 흉상이나 불상을 비누로 재현하여 화장실에 설치하고, 관객들이 그 조각을 비누로 사용하면서 작업이 변화되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를 통해 위엄 있는 조각상이 화장실이라는 공간적 맥락 안에서 일상 용품으로 그 가치의 전환을 겪는다. 그리고 전시 기간이 끝나 회수된 (화장실의) 비누는 또 다른 전시에서 작품이 된다. 한편 ‹풍화프로젝트›는 외부에 설치되는 조각상으로, 작업이 놓였던 장소, 기후, 환경과 시간, 계절 등이 작업의 최종 형태를 결정짓는다. 즉 두 프로젝트 모두 외부 환경과 조건이 작업을 변화시키며, 어떻게 유물이 되는가에 집중한 작업이다. 한편 ‹화석화된 시간 시리즈›는 ‹폐허풍경›과 더불어 이번 전시의 대표적 커미션 작업으로, 미완성이나 실패한 도자기들을 모아 순은박이나 동박을 씌워 부식되는 과정을 거쳤고, 시간 자체를 제작의 원료로 삼아 전시 기간 중에도 자연스럽게 서서히 부식되는 광경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흐르고 정지된 시간이 공존하는 폐허 풍경의 기본 요소를 전시의 전체적인 윤곽으로 제시하되, '유물', '경계' 등 몇 가지 개념을 통해 기존작업과 신작을 연결하는 작가의 주요 화두를 밝혔다. 즉 시간성과 경계성에 대한 보다 포괄적 영역을 다루려는 시도가 전시장 1층에서 선보이는 비누 건축물로 먼저 드러나고, 그 주변에 마치 폐허에서 발굴한 유물처럼 토기형태의 비누 도자기나 부서진 비누 조각들, 풍화로 닳아버린 비누들, 오래되어 금이 생긴 건물 조각, 미이라 같은 인체 형상 등을 배치하여 시간성을 시각화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공간 자체를 폐허풍경으로 재현한 1층과 대비되도록 전시장 2층은 보다 ‘박물관식’의 디스플레이 방식을 적용했다. 즉 유물이 되기 위한 다중적 구조를 각각 1, 2층에 나눠 보여주고 그 안에서도 부식되는 도자기, 화장실프로젝트› 이후 유물화된 작품, 또 다른 이동을 겪은 화려한 도자기 등을 전시하여, 하나의 전시를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중첩되는 장소로 변모시켰다.

 

과정의 전시, 그 이후

 

폐허는 사라진 부분과의 경계를 지닌 채, 소멸한 것에 대한 추측과 새로운 역사가 생성되는 장소이자, 남겨진 것들이 압축하고 있는 또 다른 시간성을 지닌 장소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역사는 작업과 작업을 넘어선 전시 자체에 다양한 각주를 덧붙이며 그 의미를 여러 갈래로 나누었다. 특정 시간을 고정시켜 폐허를 재현하고, 시간성을 몸소 겪는 부식작업과 풍화 및 화장실프로젝트 등을 통해 시간성에 대한 고찰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던 이번 전시는 그야말로 (작품이 변화하는) 그 과정 자체도 전시 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육안으로 완벽하게 구분은 어렵더라도 비누의 태생적 속성이 시간과 만나 일으키는 반응은 전시된 전 작품이 종료시점의 그것과 성질 면이나 형상에 있어 (심지어 향기마저도) 처음과 같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즉 '작품'으로 제시된 개별 존재들은 전시라는 일정 '시간'이 더해져 새로운 결과물들로 그 존재의 변화 과정 안에 놓였다. 결국 전시 공간도 일종의 폐허풍경처럼 사라지고 다가오는 시간의 지속성 안에서 그 경계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작품이 담아내는 주제를 가시화하는 거대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이는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는 비누를 매개로 작가, 관객, 비바람, 시간이 모두 공동으로 구축한, 사라지고도 존재하는 향기, (경험적) 시간, 감각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전시의 영문명 'The Abyss of Time'은 그 존재 방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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