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경: 기교artifice와 인공물artefact

 

 

파멜라 켐버-통

 

벌링턴 가든에 위치한 과거 대영박물관 민속학 박물관이었던 건물의 전시장엔 조명이 어둡게 내려앉아 있었다. 전시장안으로 들어섰을 때 내가 마주하게 된 것은 붉은 장미부터 햇살을 머금은 레몬, 라임그린과 오렌지, 사파이어 블루와 바닷물의 푸른빛 등 과일과 꽃의 색을 지닌 반투명한 중국풍 화병들이었다. 이들은 마치 바닥에서 몇 인치 정도 떨어져 부유하는 것처럼 보였고 공기 중엔 묘한 향기가 가득했다. 150점은 족히 되는 듯한 화병들은 명도와 채도에 따라 그룹을 이룬 채 조명을 받으며 희고 낮은 좌대 위에 놓여 있었다. 고요하고 차분하며 정적이 감도는 이곳은 원초적인 빛을 내뿜고 있었다. 화병 중에는 중국이나 그리스 로마의 화병 컬렉션에서 복제한 듯한 외형을 지닌 것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비범한 규모와 생략된 무늬로 인해 화병들은 마치 맥락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화병 하나하나가 매우 세심히 비누로 공들여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나는 믿기 힘든 감각에 빠지는 것만 같았다. 과거에 본 적이 없는 이 화병들은 미술사의 특정 시기나 스타일에 편입시키기 어려웠다. 내 눈앞에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불가사의하고 역설적인 세계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경외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신미경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대부분 정신성에 기인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1919년에 발표한 논문 <언캐니The Uncanny (친숙한 낯섦)>에서 ‘동일한 반복’의 사례로부터 유추한 결과를 ‘시선의 강탈’이라 표현하고 이 개념을 강박 행위와 연결 지었다. 여기서 그는 길을 잃은 사람이 친숙한 환경을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되짚어가려고 하는 시도를 예로 들었다. 이는 이후 스위스의 칼 융Carl Gustav Jung의 동시성(두 가지의 사건 혹은 일이 매우 정확히 동시에 발생하는 것) 현상으로, 프로이트의 제자 오토 랑크Otto Rank의 신경증 혹은 편집증 관점에서 분열된 자아 혹은 ‘더블double (분신 혹은 이중성)’의 개념과 새롭고 낯선 상황의 불명확성을 의미하는 개념이 되었다. 불명확성은 1818년 시인 키츠John Keats가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셰익스피어를 “소극적 수용 능력”을 지닌 자라고 언급하고 진정한 성취의 기초에 대해 논했던 가장 유명한 문구와도 연결된다. 키츠는 이 편지에서 진정한 성취는 창작 과정(혹은 예술)에 있어서 조급하게 진상이나 이성을 좇기보다는 직관적 능력에 여지를 두고 불명확성, 미스터리, 의구심 안에서 진득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불명확한 상황이란 주로 망설임, 주저함, 모순된 내적 만족이나 욕망에 기인한 긴장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 감정의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키츠의 창작 개념은 ’초초’ 혹은 ‘사실과 이성에 치우쳐 조급하게 도달하려’하는 심리 상태를 배제하였기에, 손쉽게 진정한 성취에 도달 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스풍 화병, 중국풍 화병, 기마상, 장식장 혹은 고전 스타일의 회화 등 신미경이 만들어 낸 것들은 모두 마법을 부리듯 순식간에 우리를 익숙한 감각에서 탈피시킨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생각이나 지식에서 벗어나 친숙하지만 낯선 감각으로 이끄는 일종의 메신저라고 할 수 있다. 신미경의 경이로운 인공물artefact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끊임없이 느껴지는 이러한 불명확성에서 나는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작가의 ‘진기한 장식장Cabinet of Curiosities’은 박물관의 유물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 여기에는 고전적인 조각, 사물, 복제품의 참조에 대한 아이디어와 개념도 함께 담겨 있으며 16세기 초에 등장한 용어인 기교artifice와 관련된 요소들도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의 ‘기교’는 신미경의 작품에 나타나는 기술과 독창성을 의미함과 동시에 14세기의 의미인 ‘지식 혹은 연구의 결과물’을 뜻하거나 ‘다른 무언가를 보도록 만드는 장치’를 뜻하던 술책artifice에서의 ‘art’의 의미를 참고하여 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의 ‘기교’는 ‘눈속임’이나 ‘사기’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현대적 용법과는 차이가 있다. ‘artifice’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기술’을 뜻하는 ‘ars’에 ‘만들다’를 의미하는 ‘facere’를 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독창적으로 만든 물건’이라고 말할 때에는 ‘인위적artificial’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위적’이란 말은 주로 비판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이긴 하나, 뜻을 풀이하면 단순히 ‘자연의 힘이 아닌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의미한다.

 

신미경은 작품을 통해 자연의 것과 만들어진 것, 감각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미적 가치와 물질주의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우리는 (비누를 포함하여) 작품에는 다루지 못할 재료가 없다는 생각에 매우 익숙하다. 이 생각은 연금술을 발휘하여 날것의 재료를 정교하게 녹이고 재구성하여 독창적으로 변형시키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작품의 주제와 오브제, 미완성과 완성의 간극을 넘나드는 것은 변형의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비누로 오브제를 제작하는 것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내가 보기에 신미경이 오브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제작 과정은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재닌 안토니Janine Antoni의 경우와 닮아 있다. 안토니는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여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두 작가 사이에 차이가 있기는 하나, 둘 다 작품을 제작하고 변형할 때 미술사의 참조물을 차용하고 비누, 폴리우레탄, 레진 등의 재료를 융합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인 조각의 재료로 브론즈나 대리석을, 전통적 회화의 재료로 유화 물감과 캔버스를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비누는 재료로서 고상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당시 재닌 안토니는 초콜릿과 비누로 만든 자신의 흉상 <핥기와 비누로 씻기Lick and Lather>를 발표했다. 그리고 1993년 작품 <러빙 케어Loving Care>에서 긴 머리카락을 염색약에 담그고 전시장 바닥을 붓질하며 휩쓸고 다니며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로 일컬어지던 행동, 예를 들어 잭슨 폴락의 쏟아붓기와 흩뿌리기, 이브 클랭의 누드 여성을 붓으로 사용하여 벽면에 끌거나 문지르기 같은 육체적 행위를 모방했다. <러빙 케어>에서 관객이 원하는 대로 작품을 보도록 유도하고자 했던 안토니는 전시장에 퍼진 액체로 인해 자꾸 문쪽으로 밀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안토니의 신체는 인지-여과-포화-과잉과 같은 감각들을 육체적으로 표출하는 행위의 매개체이기에 관객과의 만남은 그의 행위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편 신미경은 관객에게 다양한 비누향을 맡게 하는 지각적 감각을 유도하는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처럼 두 작가의 작품은 글로는 읽을 수 없는 요소를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주제에서 미술사적 규범을 해독하는 포스트모던 전략을 구사하는 두 작가는 단순히 유럽의 명작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미경의 <회화 시리즈Painting Series>에서 비누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재현된 어떤 것의 겉면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화병이나 장식장을 마주한 관객들은 친숙하지만 낯설고, 추상적이고 개념적이며 의미를 비워 버린 대상으로 작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혼란과 불안을 감내해야만 한다.

 

신미경의 작품은 장르별, 시대별 전통을 담고 있다. 안료가 첨가된 비누를 녹이고, 붓고, 모양을 잡은 후 단단하게 굳혀서 주조하는 <회화 시리즈> 중 풍경화에는 18~19세기 유럽 풍경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식성이 강한 액자가 사용된다. 화상을 입힐 수 있는 액체가 실수로 튀는 것에 대비하여 방호복과 작업복을 입고 방호용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적절한 용기를 준비하고 혼합 비율을 맞춰가며 비누를 만드는 제작 과정은 매우 고된 일이다. 아름다운 작품 뒤에 감춰진 위험스러운 과정을 알고 나면 이 과정을 감각적인 미사여구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해진다.

 

진기한 것들을 복제 및 주조하는 과정은 신미경을 미술사적 담론의 전면에 내세움과 동시에 유사성, 모방, 주조, ‘의미를 담는 그릇’의 개념을 대안적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또한 이 과정은 박물관을 진기한 장식장이라 부르던 시절부터 연구되어 온 미술사의 서사와 위계, 박물관학적 구분, 분류학, 기교, 그리고 미에 대한 강박에 따른 컬렉션 보관법이 은유된 혼합체라고 할 수 있다. 신미경은 전통적으로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그림을 보듯이) 사고하려 하거나 주어진 대로 바라보며 사실이나 진실만을 해석하려 하는 남성이 주도하는 유물에 대한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성이자, 서양의 전통에서 벗어난 아시아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신미경의 작품은 우리가 익히 보아 온 화병의 외형을 재현하기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고 쉽게 일반적인 화병이나 그릇을 떠올린다. 그러나 질감과 냄새를 통해 이 화병들이 비누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미경이 유럽으로 이주한 후 동서양을 여행하며 경험한 것을 토대로 <번역 시리즈Translation Series>를 만들게 되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언어적 의미를 넘어 문화, 생각의 탐구, 감탄, 취향 그리고 작가의 작품 미학까지 포괄하며 오랜 시간 습관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감각과 인식의 개념, 실제와 기교, 추론과 가설 등을 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미경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오브제들이 개인의 은밀한 컬렉션이었거나 굉장히 희귀하고 특별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해석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쉽게 보기 어렵고 말로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는 것이다. 이 작품들이 비누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가 행하던 모든 의식적 추론은 산산이 부서진다. 바로 이전까지 우리가 작품에 부여한 모든 역사적 해석과 재료에 대한 맥락은 사라지며, 이 순간부터는 작가의 예술적 의도만이 새로운 시작점으로 남는다. 왜 비누이며, 왜 오브제를 복제하는가. 이외에도 다양하고 새로운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제 이 글에서 내가 사용하는 용어 ‘기교artifice’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말하는 숙련된 솜씨, 예술, 술책, 혹은‘ars’에서 파생된 ‘arti-’와 ‘facere’로부터 파생된 ‘fice’가 합쳐진 것으로 보는 해석이며, 다른 하나는 현대적인 의미인 ‘환상’이나 ‘공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한동안 서양의 왕이나 귀족들이 탐내던 중국산 도자기나 백금 같은 동양의 공예품에 대한 서양인들의 취향이 담겨 있다. 흥미롭게도 18세기 유럽에서는 중국 도자기가 전쟁 포로들의 교환 조건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도자 제작의 비밀을 알고 있는 도공들은 감금된 상태에서 제대로 된 도자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중국, 한국, 일본이 아닌, 유럽에서는 독일의 마이센 공장에서 처음으로 작센-폴란드의 지배자 아우구스트 2세(1670~1733)를 위해 ‘트루 포슬린True Porcelain’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비밀 실험실이 운영되었다. 당시 마이센이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비법과 제작 과정을 훔쳐 비엔나와 베니스로 가져갔고 이때부터 유럽식 경질자기 산업이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1973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조나단 에릭슨Jonathan Ericsson과 E. 게리 스티켈E. Gary Stickel이 발표한 도자기 분류 체계에 대한 글을 인용하고 싶다. 이 글에 따르면, 당시 고고학에서의 주요한 쟁점 중 하나가 도자기의 비교 문화 분류였다고 한다. 그들은 신라 도자에 정통한 한국의 미술사학자이자 고고학자였고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김원용의 글을 참조하여 도자기, 특히 도자기의 형태를 중심으로 한 도자 관련 용어들을 수집하고 검토하여 표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관구기명寬口器皿이나 쌍이병雙耳甁과 같은 현지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할 경우 단어만으로는 도자의 형태를 명확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설명과는 반대로, 신미경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관람객에게 과거와 현재, 복잡함과 단순함, 동양과 서양과 같은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충돌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비누는 쉽게 분해되고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 덧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을 만들어 내는 유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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