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네 말로는 무어라 말하나요?

 

                                                                      

에드워드 알링턴, 조각가, 비평가

 

손을 씻으려니, 화장실 세면대 옆에 비누로 만든 불상이 놓여있고, 조각상의 표면을 문질러 거품을 낸 뒤 수돗물에 헹구라는 안내문이 적혀있다. 작품의 일부가 내 피부는 비누에 닿아 씻기고 깨끗하게 되는 대신, 조각상은 이전 보다 작아질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일종의 전율을 느끼며 비누로 손을 씻는다. 조각 작품으로 손을 씼는 것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한국 작가 신미경의 트랜스레이션- 화장실 프로젝트에 일부나마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들은 결국 화장실의 세면대 옆자리를 떠나 갤러리와 박물관 등으로 옮겨져서 닯아진 상태로 전시될 것이다.

 

비누는 상당히 독특한 구성물인데, 피부에 좋거나 청결과 상관 없어보이는 지방과 재, 또는 산화 칼륨과 혼합된 동식물성 지방이라는 두가지 재료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비누는 ‘비누화’라는 과정을 거쳐 더러움을 제거하는 동시에 정제 역할을 하는 물질로 변화한 화학반응의 결과물이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물과 알칼리, 계피유의 혼합공정은 BC 2200세기 경 바빌로니아에서도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1)우리가 주로 알고 있는 비누에 관한 대부분의 지식은 이슬람 문화에서 전해진 것으로서, 오늘날의 비누는 중세시대에 아라비아의 비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고대의 비누는 씻는 용도로 만들진 것은 아니었다. 비누는 조각에서 흔히 사용되는 재료는 아니지만, 조각의 마무리 단계에서 (마감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누는 특성상 주조도 가능하고, 모델링도 할 수 있고,새길 수도 있으며 심지어 표면에 그릴 수도 있다.  2)신미경은 눈부신 솜씨로 이러한 모든 기술을 터득하였는데, 중요한 점은 작가가 목적에 대한 뛰어남 감각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서양의 기독교 세계관에서 ‘씻음’은 상징적인 동시에 실질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로마 시대 유대(CE 26 - CE 36) 지방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손을 씻은 행위는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씻음’ 의식이다. 빌라도는 복음서 (마가,마태,누가, 요한)에 언급되었는데, 이 중 마태복음에  ‘예수의 운명에서 손을 씻다’ 라는 구절이 있다.‘무언가로부터 손을 씻다 To wash your hands of it’ 은 ‘회피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서양식 표현으로 일반적인 관용어구로 지금까지도 흔히 사용되고 있다. 또한 신미경이 강조하듯이, ‘씻는다’는 행위는 여성의 일로 간주된다. 지금도 종종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깨끗하다는 것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여성의 자질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손은 다 씻었지만, 또 다른 감정의 전이(轉移)가 일어났다. 내가 손을 씻기 위해 만진 조각상은 복제품인 동시에 실제 종교적 성상의  ‘번역’본이기도 하다. 이 조각의 일부를 닳게 하여 나의 몸이 깨끗해졌고, 성상을 만짐으로써 축복을 받는다. 이는 성도들이 정결해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성모 마리아상에 입을 맞추어 그 발이 광택이 날 정도로 닳는 것이나, 불교 신자들이 극락에 가기를 열망하거나 평탄한 삶을 기원하며 불상의 머리를 만지는 행위로 인해 불상의 표면이 닳는 행태와 거의 유사하다. 이렇듯 전세계적으로 모든 종교는 성상을 만지거나 씻음을 통해 정결해지는 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씻고 만지는 행위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단순한 행위인 듯 하지만 사실은 실용적이고 화학적이며 역사적일 뿐 아니라 문화적이고 성별과도 관련된 매우 복합적인 일이다. 신미경 작가는 이러한 예술적인 프로젝트를 ‘트랜스레이션’ 이란 용어를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그렇다면 신미경이 말하는 ‘트랜스레이션’ 즉 ‘번역’ 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움베르트 에코는 그의 저서 “생쥐인가 들쥐인가, 협상으로의 번역” (3)에서 번역의 기준을 정립한 바 있다. 그가 첫번째로 언급한 것은‘본래 뜻대로 번역하기’(즉, 한 언어를 있는 그대로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이다. (4) 신미경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인 몸을 웅크린 아프로디테 2002 (이하 아프로디테 2002)’를 살펴보자. 이 조각상은 대리석처럼 제작된 비누조각으로 나무와 철재로 된 뼈대에 비누를 주조하고 조각한 작품으로 크기는 90x90x70cm이다. 이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115 x 74 x 58 cm 크기의 복제본을 다시 루브르에서 주조한 것을 참고해서 만든 것이다. 이 로마시대 복제본은 비엔나의 비너스라고도 불리며, 200 -240 BC 사이에 활동했던 디오달라스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실상 이 조각상의 포즈는 여러 버전으로 복제되어 왔는데, 그 중 대부분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아프로디테 2002 는 작가가 미의 여신이 목욕하는 중 누군가의 방해를 받은 순간을 표현한 널리 알려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자신의 몸을 캐스팅한 것이다. 여기에 많은 문제들이 제기될 수도 있겠으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이것이 한 언어를 있는 그대로 다른 언어로 옮긴 “본래 뜻대로 번역하기”인가 하는 점이다. 처음에는 이들이 조각 작품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가정은 옳지 않다. 종교적 의식이나 일상 의례와 분리된 독립된 미학으로서의 조각은 전적으로 서양식 개념이다. (5) 신미경 작가가 서울대학교 재학시절부터 배우고 기술을 습득하고 전문가의 경지에 이른 서양식 조각의 전통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 동경예술대학교로 유학간 김복진에 의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었고, (6) 일본은 이 전통을 메이지 유신 초기에 주로 이탈리아를 통해 받아들였다. 내가 신미경의 아프로디테 2002를 ‘본래 뜻대로 번역하기’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작가는 한국과 영국에서 교육받고 작업해온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서양의 이미지를 동양적 형태로 번역함으로써 인체를 미의 기본 범주로 여겨온 서양식 전통에서 유래한 여성 조각상의 개념을 번역한 것이다.

 

에코는 번역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논의하면서 ‘길이’에 대해 언급하는데, 만일 A4 용지에 같은 크기의 폰트로 쓰여진 200장의 원고를 번역했더니 400장의 원고가 되어 돌아왔다면 뭔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위의 예처럼, 신미경 작가의 번역 또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에코는 또한 디즈니에서 번역한 피노키오와 콜로디(Collodi)의 원작에 나오는 피노키오를 대조시킨다. 신미경 작가의 트랜스레이션은 디즈니의 ‘번역’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그녀의 작품은 내용의 재구성이나 원작의 대체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코는 관용구를 예로 들면서, 어떤 언어로 된 문장을 다른 언어로 직역하면 의미가 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같은 의미에 상응하는 관용구로 대체한다면 뜻이 통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즉, ‘농담하다’ 라는 의미의 ‘다리를 잡아 당기다 to pull someone's leg’ 라는 영어 표현을 문자 그대로 이탈리아어로 직역하면 아무 의미가 없지만 ‘코를 잡아 당기다 to pull someone's nose’ 로 번역하면 같은 뜻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미경의 작품이 이처럼 직역과 의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간극에 대해 얘기한다는 점에서는 움베르트 에코의 개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작가는 자신의 동양적 체형을 그녀가 참고로 한 서구의 고전 조각상의 이상적 체형으로 전환시킨다. 에코에 따르면 번역은 “문자 그대로에 충실하지 않아야” 한다. (7) 그는 또한 타당성과 동등성 그리고 충실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신미경의 작업은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에 적합하면서도 이러한 기준에도 부합한다. 에코가 기술한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은 번역을 ‘협상의 한 형태’라 말한 부분인데, 이는 마치 신미경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신미경의 작품을 마주 한 순간 우리는 발상의 전환, 익숙한 이미지에 관한 미묘한 의미상의 변화, 재료의 변화,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전환을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 2002에서 보듯이, 신미경은 이상적인 여성의 몸에 관한 서양적 관념을 실제 동양 여성의 형태로 번역한다.

 

신미경의 트랜스레이션 연작 중에는 색조가 들어갔거나 색이 칠해진 고전적 조각상들이 있다. 19세기에 이르러 고대 조각상이 실제로는 채색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전통적인 방법과 단색의 누드 조각상에 익숙했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가장 대표적 예는 현재 리버풀 워커 아트 갤러리에 보존되어 있는 카노바(Canova)의 영국인 도제였던 존 깁슨 (John Gibson, 1790 - 1866)의 작품, 채색 비너스 (Tinted Venus, 1851-6)이다. 이 작품은 너무 사실적인 나머지 관능적으로 보였으며, 예술을 저급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으며 당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다. 비누에 채색을 가한 신미경의 작품은 19세기에 일어났던 이러한 논란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트랜스레이션 작업에 신비감을 더해준다. 그것은 재료, 즉 비누와 인체의 연관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하는 것은 현재 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는 조각들이 한 때는 개인 소장품이자 전리품이자 지식과 권력의 상징이었다는 점이다. 우월하다고 여겨졌던 서양적 가치의 상징들은 그 자체로 또는 복제를 통해 교환 및 무역의 메카니즘이 되었으며, 마가렛 비서(Margaret Visser)가 음식에 대해 논하며 언급했듯 “여성들은 항상 가족과 종족의 조화를 상징하는데 이용되어 왔다. 즉 여성은 결혼을 위해 양도하거나,공유하거나, 훔치거나, 지위를 강화하거나 또는 이러한 것들을 절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었다.”(8)모든 번역은 원본에 대해 면밀히 질문을 던지고, 그 근본을 풀어헤친 후 새로운 언어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신미경의 작품은 두 나라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히 다가오는 이러한 차이점을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작가가 품은 원본에 대한 의문을 드러내 준다.

 

최근에 작가가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트랜스레이션–도자기 시리즈와 트랜스레이션-고스트 시리즈는, 기존의 트랜스레이션 보다는 단순해 보인다.  뛰어난 테크닉을 자랑하는 이 작품들은 일종의 교환 시스템인 서양의 소비 시장을 겨냥해 제작되었던 옛 중국 도자기들을 비누로 재현한 것이다. 때때로 작가는 운송용 나무상자 위에 반사 철판을 올려 놓고 그 위에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고, 조각대 위에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운송과 보존 및 보관의 개념들을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조각이나 예술작품들은 전시되지 않을 때 상자 안에 보관되고, 전시될 때에는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좌대나 기단 혹은 진열용 유리 케이스와 같은 기계적(보호) 장치를 사용한다.

 

고온에서 규산염을 가열하여 만든 유리나 도자기를 유기적이고 비유기적인 재료들과의 독특한 혼합물인 비누로 제작하는 것은 한 언어로부터 다른 언어로의 직역을 뜻한다. 이러한 번역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다른 재료를 가지고서도 이러한 작품들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재료에서 오는 이러한 장점은 동시에 작가가 극복해야 하는 단점이기도 하다. 도자기나 유리는 깨지기는 쉽지만 사실상 반영구적인 재료로서, 우리가 배운 선사시대 문화에 관한 지식의 대부분은 이러한 도자기류의 유물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정적인 환경 속에서라야 오래 보존될 수 있는 종이처럼, 비누라는 물질 또한 견고하면서도 쉽게 변모될 수 있고 말 그대로 씻겨 없어질 수도 있는 재료이다.

 

한국은 예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도자기 생산국으로서의 위상이 높다. 또한 이러한 유산은 세계적인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는 2007년에 작가와 함께 그녀의 작품인 트랜스레이션: 달항아리 2007 을 전시보기 위해 대영박물관 한국관을 방문했었다. 우리는 제일 먼저 박물관의 소장품인 달항아리 특별전시를 보러 갔다. 그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도자기였는데, 흥미롭게도 현재 서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예가인 버나드 리치 (Bernard Leach)가 대영박물관에 기증한 것이었다. 신미경 작가의 슬래이드 동문이기도 한 리치는 일본의 미술이론가이자 한국의 예술 특히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던 한국예술 후원자 그리고 민예운동의 창시자였던 야나기 소에추 (역주 : 야나기 무네요시로도 알려짐) 와 친한 동료 사이였다. 이 두 사람의 노력으로 서양으로 건너간 수많은 한국의 도자기들이 서양에 소개될 수 있었다. 나중에, 트랜스레이션: 달항아리 2007 을 보기 위해 전시장으로 올라갔을 때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치 진품처럼 진열용 유리 케이스에 전시된 또 다른 달항아리였다. 이 작품이 도자기가 아닌 비누조각이라는 것은 작품명을 읽고 나서야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아래층의 달항아리 유물은 리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작품의 표면에서 그러한 세월의 흔적이나 사람의 손때는 깨끗이 사라지고 없다. 신미경 작가의 달항아리 작품도 이처럼 씻겨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연약하지만 그 연약함의 본질은 매우 다르다.

 

신미경의 작업은 보호하고 지켜주고 관리해야 하는 연약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돌아보게 한다. 즉, 우리 자신과 가족, 친구,나아가 주변환경 그리고 문화적인 유산과 함께 문화적인 교류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이러한 것들은 이루기도 힘들 뿐 아니라 유지하기도 힘들다. 당신은 신미경의 작품으로 손을 씻을 수는 있지만, 그녀의 작품이 던지는 의미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1) Wilcox, Michael, "soap" in Hilda Butler. Poucher's Perfumes, Cosmetics and Soaps ( 10th edition.) . Dortrecht: Kluwer Academic Publishers. pp. 453

(2) Jack C. Rich, The Materials and Methods of Sculpture, Oxford University Press, 1947, pp 357 - 358

(3) Umberto Eco, Mouse or Rat, translation as negotiation, A Phoenix paperback, Weidenfeld & Nicholson, GB 2003.

(4) ibid, p2

(5) See: Paul Oskar Kristellar, The modern System of the Arts, in Renaissance Thought and the Arts, collected essays, Princeton University Press, New Jersey, 1980, pp 163-227

(6) Kim Pok-yong, Modern Sculpture Responds to International Trends, Korean Arts Guide, Yekyong Publications Co., Ltd, pp 90-91

(7) Umberto Eco, Mouse or Rat, translation as negotiation, A Phoenix paperback, Weidenfeld & Nicholson, GB 2003.p5.

(8) Margaret Visser, The Rituals of Dinner, the origins of, evolution, eccentricities, and meaning of table manners, Penguin Books, London, 1991.p3

 

Edward Allington 2009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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