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으로부터 해체와 재구축

 

박지향

우양미술관 학예실장

 

 

우양미술관은 한국 예술계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중진작가들에게 전시를 통해 작업의 발전과 전환의 계기를 제공하고자 우양작가시리즈를 기획해왔다. 이에 2018년 우양작가시리즈는 ‘비누’로 작업세계를 구축해온 신미경 작가를 선정하였다.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25여 년간 작업해온 작가의 작업을 되돌아보고 국내 미발표작과 신작 62점, 아르코미술관 개인전 <사라지고도 존재하는>에서 발표되었던 건축 프로젝트를 더해 총 230여 점의 대규모 개인전을 지역 관람객에게 최초로 선보인다.

 

전시의 부제 <신미경-오래된 미래>는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동명에서이로부터 차용한 제목으로, 오래된 문명 (혹은 문화)을 대하는 정형화된 인식의 틀을 해체하여 동시대성을 발굴해온 신미경의 시선과 태도에 영감을 받아 현재와 미래로 그 생명을 확장해보자는 제안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소모되는 재료인 ‘비누’를 이용하여 서양 조각상과 회화, 아시아의 불상과 도자기, 나아가 폐허가 된 건축 잔해 등 특정 문화를 표상하는 대상물을 재현해왔다. 이는 단순한 모사가 아닌, 의도적으로 대상물의 표피적 속성만을 대상으로 삼아 탈 문맥화하여 또 다른 원본으로 전이시켜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게 한다. 이는 서구 편향적 근대화 의식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견고한 권위와 위계에 대한 의문,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따른 번역과 해석의 필연적 왜곡, 예술품 혹은 유물의 성립방식에 대한 고찰, 나아가 소멸 된 흔적을 통해 가시화되는 시간의 역설적 측면 등 비누가 지닌 유약한 재료적 특징이 담아낼 수 있는 개념을 시각해왔다.

 

특히 본 전시는 신미경의 작품이 이동되는 장소와 감상자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변화되는 해석의 개방성까지 작품의 일부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유물과 유적이 산적해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인 도시 경주의 장소성 (sense of place) 과 중첩되어 원본과 재현된 작품 사이에서 혼란과 애매함이 극명하게 야기된다. 이를 통해 작품의 화려한 조형성 이면에 담긴 본질적인 사유에 도달하기 용이하도록 하였다. 불국사의 금동아미타불, 석굴암의 본존불, 감은사지 터, 황룡사지 터, 수많은 왕릉 속 출토된 유물을 떠올리며 미술관에 도착한 감상자가 작품을 대면 했을 때, 작품은 또 다른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며 새로운 층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가 재현한 새로운 문명의 부산물(회화, 건축, 불상, 도자기, 그리고 조각)을 박물관 ‘컬렉션’으로 가정하여 형식적으로 박물관식 전시형태를 취하였다.

 

거대한 규모로 전시장 내에 축조된 건축 프로젝트 <폐허 풍경>은 기존 작품에 비누 2톤이 추가되어 숭고한 풍경을 선보인다. 폐허는 자신의 유한성을 비퉈지는 스크린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1] 소멸된 흔적 속에서 과거의 이야기가 타임 랩스 (time lapse)처럼 스치며, 닳고 부서진 잔해의 풍경은 압도적인 서사적 노스탤지어를 촉진시키는 경관으로 작동하며 시간성에 대해 상기시킨다. 폐허 풍경은 소멸된 것을 구축하였으나 리를 조우하는 순간 영원히 살아나는 상보적 성격을 띤다. 특별히 <폐허 풍경> 이 설치된 공간에는 전망대 형식의 계단을 설치하여 전시장내에 폐허의 잔해를 전체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게 하였다.

작가의 연작별 작품으로 구성된 섹션들과 달리 중세 서구의 트립틱(triptych, 삼면화) 형식의 대형 좌대 위에 다양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비누 불상 30여점을 한꺼번에 모아 설치한 공간이 이어진다. 불상이라는 형태의 일원화를 통해 작가 작업의 의미적 측면이 부각되도록 구성하였다.

 

이와 함께 회화의 의미를 해체하는 <회화> 연락, 신작과 국내 미발표된 백자로 구성된 <트랜스레이션 -백자> 연작, 풍화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대형 그리스 입상과 화장실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불상 조각 및 트랜스레이션 연락으로 제작되었던 도자기를 시간의 흐름을 압축시켜 부식시킨 확장된 <화석화된 시간> 연작이 추가되어 선보인다.

 

또한 아르코미술관 외부에서 전시하였던 <풍화 프로젝트>의 조각상은 이례적으로 우양미술관 옥상과 입구에서 ‘풍화’시키는 작업으로 이어져 이동한 장소에서의 생겨날 시간의 ‘겹’을 지켜보게 된다. 작품을 일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화장실 프로젝트>는 실제 미술관 화장실에 설치하여 미술관 내외부로 전시공간을 입체화하였다. 이 두 가지 프로젝트는 화이트 큐브의 위계적 분리를 통해 사물을 작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관행에 대해 의문을 던져왔다. 즉, 신미경 화장실 프로젝트나 풍화 프로젝트는, 작품 자체에 완성된 개념을 두기 보다 시간의 흐름이 반영되는 작품의 외부적 요소나 관람자의 행위를 작품의 제 2의 작가로 상정한 것이다. 본 전시를 통해 동서양, 조각과 건축, 소멸과 무한 등 작품의 외연과 내연을 넓혀가는 작가의 향후 작업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1] 민주식, 폐허의 미적 경험(미학 제 81권 1호, 2015년 3월),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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